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(문단 편집) == 연혁 == 2000년 11월에 경기 지역의 선수들을 모아 창단한 것이 시초였다. 처음에는 신생팀이라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, 2002년 [[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|청룡기]] 8강에 들면서 지역의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다. 그러나 그 주역이었던 구본원은 [[고려대학교 야구부|고려대]] 입학예정자 신분으로 고려대 숙소에서 훈련하다가 선배들의 구타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.[[http://legacy.www.hani.co.kr/section-006001000/2003/01/006001000200301221728788.html|#]][* 고려대는 고교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학교지만 그 이면에는 강한 팀군기와 규율, 구타 등으로 인해 타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.] 2003년에는 [[서울고등학교 야구부|서울고]]에서 이성덕이라는 선수가 전학했는데 당시에 경기 출전 기록이 전혀 없었지만 훗날 배우 [[이태성]]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야구선수 이력이 화제를 모았다.[* 그 과정에서 소속사가 청소년대표 드립을 치는 바람에 야구팬들에게 눈총을 샀지만.] ||[[파일:NK5ctk8.jpg]]|| ||[[김광현]] || 이대로면 정말 쓸 거 하나 없는 고교 야구부가 되었겠지만, 이 팀에게도 전성기가 찾아왔다. 바로 안산에서 자란 떡집 아들 '''[[김광현]]'''이 안산공고에 진학한 것이다. 이은승 감독[* 전 빙그레 - 한화 투수, 한때 [[퓨처스리그|2군]]에서만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는 말이 있었지만, 부여 외산중 감독이던 2016년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고 외산중 야구부는 등록 유보 상태가 되었다.]의 필사적인 설득과 집을 떠나서 야구하기 싫었던[* 근데 어차피 안산공고에 가서도 기숙사에서 살았다고 한다.~~도대체 왜 간거지~~] ~~[[서태웅]]?~~ 본인의 선택으로 안산공고에 진학한 김광현이 뛰던 3년 동안 안산공고는 전국무대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. 이 시기 고교야구 팬들은 [[김광현]]의 활약을 보고 [[안산공고]]를 '''광현공고'''라고 칭했을 정도로 김광현은 안산공고의 절대적인 선수였다. 김광현이 고교 1학년이던 2004년 인천 지역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인 [[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|미추홀기]] 우승, 그리고 2005년 김광현이 고교 2학년일 때, 당시 우승후보였던 [[인천고등학교 야구부|인천고]]를 격침시키면서 [[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|황금사자기]] 4강까지 올라갔다. 특히 이 황금사자기가 결승 진출의 최적기였는데, 4강 상대가 비교적 만만했던 [[성남서고등학교 야구부|성남서고]]였기 때문이었다. 그러나 성남서고 입장에서도 타선이 약한 안산공고는 만만한 상대였고, 결국 투수전 끝에 9회말 낫아웃으로 출루시킨 주자가 끝내기 주자가 되면서 안산공고는 0-1 분패를 하고 만다. [youtube(_yfareg-8RM)] 김광현이 3학년이던 해인 2006년, 청룡기에서 안산공고는 4강 진출에 성공했다. 다만 이 과정에서 김광현은 꽤나 무리했다. 특히 16강 [[전주고등학교 야구부|전주고]]와의 경기가 연장 15회 [[서스펜디드 게임]]이 되는 바람에 이틀간 226개의 공을 던지는 등, 혹사 당했다. 다만 당시 감독이던 이은승 감독은 여기서 다른 지도자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. 특히 김광현과 동갑내기인 [[정영일(야구선수)|정영일]]의 사례와 비교한다면 현명한 선택을 했는데, 청룡기 4강전에서 김광현을 등판시키지 않았다. 체육특기자 자격이 주어지는 8강에 들어가 다른 선수들의 진학이 비교적 수월하게 되자 더는 무리시키지 않은 것이었다. 같은 선택은 [[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|봉황대기]]에서도 반복되었고, 봉황대기 4강에 올랐던 안산공고는 그렇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. 그리고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김광현이 졸업하면서 안산공고는 그냥 평범한 팀 1로 남았다. 지역 예선 통과조차 쉽지 않았고[*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전국대회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다. 치른 경기 수도 고작 3~4경기 뿐이었다.] 주말리그 체제 도입 후에도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. 2014년 봉황대기에서 8강에 오른 것이 김광현 시대 이후 최초의 8강 진출이다. 2017년 황금사자기에서 약 3년 만에 전국대회 8강에 올랐으나 [[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|광주동성고]]에 막혀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. 이어진 청룡기에서는 8강전에서 [[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|포철고]]를 꺾고 김광현 시대 이후 11년 만에 메이저 전국대회 4강에 진출했으나 [[배명고등학교 야구부|배명고]][* 이 대회에서 배명고는 창단 후 첫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.]에 2-7로 패하며 결승 진출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. 2018년 황금사자기에서는 투구 수 제한 강화의 첫 희생양(?)이 되었다. 에이스 전용주가 18일 열린 [[충훈고등학교 야구부|충훈고]]와의 1회전에서 80구를 던지는 바람에 76개 이상 투구 시 4일을 쉬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21일 [[덕수고등학교 야구부|덕수고]]와의 2회전에 등판하지 못하면서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. 2019년 청룡기에서는 1회전에서 [[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|울산공고]]한테 2:7로 패하며 탈락했다.이후 협회장기 대회에서도 출전했으나 또 1회전에서 [[서울디자인고등학교 야구부|서울디자인고]]한테 패하며 탈락했다. 그러나 봉황대기 1회전에서 [[북일고등학교 야구부|북일고]]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. 하지만 32강전에서 [[부산고등학교 야구부|부산고]]한테 0:10 6회 콜드패로 탈락했다. 사족으로, 이 해에 감독이던 홍상욱이 7월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. [[https://www.yna.co.kr/view/AKR20190719147700061|#]][* 학부모들로부터 받은 후원금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.] 이후 감독 자리는 손명기 코치가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고 안산공고 측은 다급하게 [[http://www.korea-baseball.com/board/post_view?board_idx=1&post_idx=12913|감독 모집]] 공고를 낸 끝에 [[송원국]]이 정식으로 부임했다. 2020년 청룡기에서는 32강전에서 [[동산고등학교 야구부|동산고]]를 6:5로 꺾고 16강에 진출하였다. 16강전에서 [[공주고등학교 야구부|공주고]]마저 6:1로 꺾고 8강에 진출하였다. 8강 상대는 [[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|광주동성고]]이다. 그러나 광주동성고한테 1:7로 패하며 탈락했다. 2022년 이마트배에서는 16강전에서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원고]]를 2:0로 꺾고 8강에 진출하였다. 8강에서 [[부산고등학교 야구부|부산고]]마저 제압하며 준결승에 진출하였다. 더블 에이스 홍은성과 박일훈이 투구수 제한에 걸렸지만 하상욱이 부상 투혼을 선보이며 호투를 펼쳤다. 그러나 준결승에서 [[장충고등학교 야구부|장충고]]한테 패하며 탈락했다. 2022년 대통령배에서는 32강전에서 전년도 대통령배에서 8강까지 갔던 [[강릉고등학교 야구부|강릉고]]를 10:9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16강에 진출하였다.16강에선 [[세광고등학교 야구부|세광고]]를 9:4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. 8강에서는 [[덕수고등학교 야구부|덕수고]]와 맞붙어 10:2 콜드게임승을 거두고 5년 만에 전국대회 4강에 진출했다. 한 시즌 두 차례 전국대회 4강에 오른 것은 김광현 시대인 2006년 이후 16년 만이다. 그러나 준결승에서 [[대전고등학교 야구부|대전고]]를 상대로 4:18로 대패하며 대통령배 첫 4강 기록에 만족해야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